엄마의 불고기 레시피

엄마는 평생 직장을 다니시면서도 두 아이를 키우고, 공부까지 계속하셨다.
육아와 살림을 병행하신 고등학교 선생님이셨는데, 박사학위까지 마치고 마흔이 넘어서 대학으로 가셨으니
내 기준에선 어마어마한 슈퍼우먼이시다.

나는 석사 공부 중에 유엔 인턴이 되는 바람에 (일과 직장을 병행하기 버겁다며;;;) 대학원 공부를 바로 중단했고,
결국 지금은 부모님보다 가방끈이 훨.씬. 짧은 자식으로 살고 있다.
요즘 세상에선 보기 드문 일이라, 가끔 그 사실이 참말로 우습기만 하다.
(실제로 부모님 그리고 내 친구들과 이 얘기를 하며 깔깔 웃는다. 내 절친들은 모두 가방끈이 길기도 하다.)

나도 아이를 키우며 일하는 지금
한국에 계신 부모님 생각이 나고 엄마가 그리울 때면
쉴틈 한 번 없던 우리 엄마의 인생을
종종 찬찬히 따라가 보기도 한다.

엄마는 50년대생이시다.
딸 넷, 아들 하나 중 둘째로 태어나셨다.
외할아버지가 의사셨다니 유복했을 법도 한데 실상은 달랐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외할아버지의 수입은 없었고,
엄마의 기억 속 외할머니는 “먹고 살기 위해” 쉴새없이 일하시던 분이었다.
시장 보따리장사까지 안 해본 일이 없을 만큼
손에 굳은살이 박이도록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셨고 남매를 모두 대학을 보내셨다고 한다.

그런 환경에서 자라서였을까.
외할머니 말씀에 엄마는 어릴 적 단 한 번도
그 무엇 하나 해달라며 조르거나 투정을 부린 적이 없는 아이였다.
늘 스스로를 단단히 다잡고, 주어진 형편 안에서 묵묵히 자라난 아이.

외할머니께서 들려주신 일화 중 두고두고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다.
분기마다 학교에 육성회비를 내야 하는 날이면
엄마는 아침에 학교로 바로 가지 못하고,
마당에서 한참을 서성이다 겨우 발걸음을 옮기곤 했다고 한다.
생계에 허덕이는 외할머니께 차마 돈을 달라고 할 수 없었던
어린 소녀 시절 엄마의 선한 마음이
어찌나 기특하고 애틋하던지
눈물이 핑 돌았다.

참을성 많고, 배려심 깊은 아이.
그때 이미 엄마는 지금의 엄마를 만든 성품을 다지고 계셨던 것이 아닐까 싶다.

대학 시절 내내 엄마는 과외를 하며 등록금을 직접 벌었고,
졸업하자마자 고등학교 가정과 선생님이 되셨다.
엄마가 대학을 졸업할 무렵 외할머니와 이모들이 모두 미국 시카고로 이민을 가셨다.
하지만 그 즈음 맏아들이던 아빠를 만나 결혼하시면서
엄마만 한국에 남으셨다.
그 선택 하나로, 엄마의 인생은 완전히 다른 길로 향했다.

스물 몇 살, 아직 세상을 다 알기엔 너무 어린 나이에
엄마는 맏며느리가 되었다.
한국에 친정도 없이 혼자서 새로운 집안의 중심이 되어야 했던 그 시절,
직장과 육아, 대학원 공부, 살림을 모두 병행하며
엄마는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켜내셨다.
나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이미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으니,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엄마는
정말 대단했고, 또 얼마나 힘드셨을까.

그 바쁜 와중에도 엄마는 공부를 놓지 않으셨는데
두 아이를 키우며 일하고, 또 공부하고,
결국엔 두 번의 해외 유학길에도 오르셨다.
게다가 그 유학길에 어린 오빠와 나를 함께 데리고 가셨다.
덕분에 우리는 일본어도 배우고 영어도 배웠지만,
지금의 나로선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는 일이다.

그렇게 분주한 날들 속에서도
저녁이 되면 식탁엔 언제나 집밥이 있었다.
엄마가 뚝딱 만드신 음식은 하나 같이 모두 푸짐하고 맛있었다.
퇴근하고 돌아와 피곤하셨을 텐데도
엄마는 늘 재빨리 저녁을 차리셨다.
(나도 비로소 엄마처럼 되기까지 한 10년도 넘게 걸린 것 같다.
심지어 국이나 찜, 카레를 푹푹 끓이는 동안 토지나 삼국지 등 대하소설을 짬짬히 읽으신 기억도 있는데
나는 절대 그렇게 못 한다.)

저녁 식사를 마치면 늘 바로 후식을 준비해주셨다.
계절 과일이나 작은 디저트를(동네빵집에서 산 호두과자나 케잌, 아이스크림 등) 먹으며
온 가족이 거실에서 9시 뉴스를 함께 봤는데
그 시간은 단순한 식사 후 루틴이 아니라
엄마와 아빠가 우리에게 세상 이야기를 들려주는 소중한 배움의 시간이었지 싶다.
정치, 시사, 역사, 국내외 사회 문제까지.
그때 들은 이야기들이 내 사고방식의 밑바탕이 되었다.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마흔 살이 되던 해,
처음 외교관 여권을 손에 쥐던 순간
문득 떠오른 추억 속의 장면은
바로 초등학교 4학년 즈음 부모님과 다함께 TV를 보던 우리 네 식구의 모습이었다.
그 작은 순간이 내 세계를 넓히고,
결국 나를 지금의 나로 만든 것 같다.

결혼해서 미국으로 왔을 때,
내가 나름 가장 먼저 마스터한 요리가 바로 엄마의 불고기였다.
그 후로 수백 번은 만들었고,
이젠 계량도 하지 않는다.

손이 기억하는 맛을 선물해주신 우리 엄마.
엄마, 언니, 여동생 모두 미국으로 이민을 가시고,
하나 밖에 없는 딸도 미국으로 이민을 가버린 우리 엄마.
나는 멀리 계신 나의 엄마가 매일 정말 그립다.

엄마 불고기 레시피 — 불고기용 소고기 2 파운드 기준

1) 소고기는 설탕 4.5큰술을 넣고 미리 30분 이상 재운다.
2) 다음 재료를 챠퍼나 믹서에 모두 넣고 갈아 양념장을 준비한다:
양파 1개 반
간장 6큰술
물 4.5큰술
미향 혹은 미린 4.5큰술
마늘 9쪽
깨소금 3큰술
참기름 3큰술
후추 약간
3) 소고기를 양념장에 잘 버무려 30분 이상 재운 후 중불로 달군 팬에 볶다가 채썬 대파나 양파, 당근, 버섯 등을 추가한다.
4) 마지막에 깨소금을 뿌려 마무리.


One response to “엄마의 불고기 레시피”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